재난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자마자 그 결말을 두고 친구랑 다툰 적, 있으세요? 저는 딱 한 번 있어요. 2022년 여름, '비상선언'을 보고 나오던 그날 밤이었죠.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데, 저랑 친구 표정이 서로 좀 묘했어요.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야, 근데 그 결말 너는 어떻게 봤어?" 하고 입을 뗐죠. 근데 이게, 서로 생각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한 명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냐" 하고, 다른 한 명은 "아니 그건 좀 아니지 않냐" 하고요. 집에 가는 길 내내 티격태격했던 기억이 나요. 근데 지금 돌이켜보면, 영화가 그렇게 관객을 편 갈라 싸우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이 그냥 흔한 재난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었던 것 같아요. '비상선언'은 누적 205만 명이 든 항공 재난극..
개봉하고 둘째 주쯤 됐을까요, 평일 저녁이었어요. 한여름 더위가 딱 정점을 찍던 날이라 극장 안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죠. 솔직히 처음엔 별생각 없이 갔어요. 하정우랑 주지훈, 이 두 배우가 같이 나온다는 게 궁금했거든요. '이 조합이면 케미가 어떨까' 하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죠. 근데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데, 머릿속에 남은 건 좀 다른 거였어요. 처음엔 서로 으르렁대던, 그것도 하필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자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어느새 그렇게 진한 사이가 되어 있더라고요.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저렇게 됐지 싶었죠.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그 생각이 계속 맴돌았어요. 처음엔 그냥 배우 조합이 궁금해서 본 영화였는데, 나올 땐 두 사람의 그 관계가 더 오래 남더라고요. 두 사람이..
누적 관객 435만 명. 배우 이정재가 감독으로 처음 만든 영화 '헌트'가 2022년 여름에 남긴 성적이에요.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좀 놀랐어요. 아무리 이정재가 유명한 배우라지만, 그 화제성 하나만으로 이 정도 숫자가 나오긴 어렵거든요. '뭔가 있으니까 이렇게 든 거겠지' 싶었죠. 그 '뭔가'가 뭔지는 직접 보고 나서야 알겠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엔 '배우가 감독까지 하면 얼마나 하겠어' 하는 삐딱한 마음도 좀 있었어요. 근데 웬걸, 초반부터 이야기가 어찌나 촘촘하게 조여오는지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누가 진짜 편이고 누가 적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보는 내내 계속 머릿속으로 추리를 하게 됐어요. 다 보고 나서는 '이걸 데뷔작으로 만들었다고?' 싶어서 좀 놀랐고요. 435만이..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한테 '베이비박스'라는 말은 그냥 뉴스에서 스쳐 지나가는 먼 이야기였어요. 나랑은 별 상관없는, 어딘가 딱한 사연들 정도로만 여겼던 거죠.그 생각이 바뀐 건 개봉하고 얼마 안 된 평일 저녁이었어요. 그날은 웬일인지 혼자 영화가 보고 싶어서, 사람 없는 작은 상영관에 자리를 잡고 앉았죠. 근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까, 그 '베이비박스'라는 단어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져 있더라고요. 스크린 속 사람들이 더 이상 뉴스 속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딘가 실제로 살아 있을 것 같은 사람들로 느껴졌거든요. 혼자 봐서 그랬는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에서 못 일어나고 여러 생각을 했어요.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중개인'은 결국 '가족이 뭘까'를 조용히 묻는 영화예요. 근데 그 질..
누적 관객 12만 명. 흥행 숫자만 보면 '아, 조용히 지나간 영화구나' 싶죠. 근데 이 영화,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작품이에요. 관객 수랑 이 초청 이력 사이의 간극이 좀 크죠? 저는 그 간극이 궁금해서 이 영화를 찾아본 사람 중 하나였어요. 개봉 초반에 작은 예술영화관에서 봤어요. 멀티플렉스처럼 크고 북적이는 곳이 아니라, 좌석도 몇 개 안 되는 아담한 상영관이었죠. 근데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는데도, 저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뭔가 바로 일어나서 나가버리면 방금 본 걸 흐트러뜨리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거든요.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다른 관객들도 비슷했어요. 다들 말없이 앉아 있던 그 정적이,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또렷하게 남아 있어요. 관객 12만 명짜리 작은..
정치색 강한 영화라고 하면 왠지 좀 부담스럽죠. 무겁고 어렵고, 뭔가 한쪽 편을 들라고 강요하는 것 같고요. 저도 딱 그런 편견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도 처음엔 좀 망설였죠.제가 이걸 본 건 코로나19가 한창이라 영화관 가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던 때였어요. 그날도 마스크 단단히 쓰고, 사람 없는 작은 상영관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죠. 근데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뭐였냐면, "어? 이거 정치 영화가 아니었네" 하는 거였어요. 남과 북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긴 한데, 정작 영화가 보여주는 건 이념이 어쩌고 하는 얘기가 아니었거든요. 총알이 빗발치는 그 아수라장 한복판에서, 결국 살아남으려고 서로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어요. 그게 이념이고 뭐고 다 떠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