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6억 9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입니다.2023년 6월 한국 개봉 첫 주에, 저도 친구랑 큰 상영관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런데 첫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어, 이거 뭔가 다른데?' 싶더라고요. 화면이 그냥 애니메이션이 아니었거든요. 만화책 페이지가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림 스타일이 장면마다 확확 바뀌는데 그게 어지럽기는커녕 눈이 즐거운 거예요. 옆에 있던 친구도 저도 한동안 말없이 화면만 봤어요. 다 보고 나와서는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소리부터 나왔고요.이 영화가 첫 장면부터 뭘 어떻게 다르게 했길래 그렇게 느껴졌는지, 줄거리랑 기억에 남는 장면, 그리고 직접 보고 내린 제 총평까지 지금부터 하나씩 편하게 풀어볼게요..
전 세계 흥행 수익 3억 8,400만 달러. 숫자만 떼어놓고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아껴온 사람이라면 알죠. 전작들이 세워둔 기대의 높이에는 못 미쳤다는 걸요. 개봉 당시 여기저기서 아쉽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던 것도 기억합니다. 그걸 다 알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개봉 첫 주, 여름 저녁이었고 옆자리엔 아버지가 계셨죠. 그런데 스크린 앞에 앉아 이야기가 흘러가는 걸 보고 있자니, 그 숫자가 참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흥행이 어떻든, 지금 이 자리에서 아버지와 내가 같은 장면에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 순간엔 그게 전부였습니다.줄거리 — 두 개의 시간대가 만드는 한 편의 우화'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1944년과 1969년, 두 개의 시간대를 교차하며 이야기를 엽니..
3시간짜리 영화라고 하면 저는 일단 겁부터 납니다. 극장에서 그 긴 시간을 끝까지 집중해서 본 적이 손에 꼽거든요. 중간에 한 번쯤은 시계를 보게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오펜하이머'는 달랐습니다. 2023년 여름, 개봉 첫 주말에 제일 큰 상영관에서 친구와 나란히 앉아 봤는데, 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길, 저희 둘 다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무슨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그런 침묵이었죠. 전 세계 흥행 10억 달러, 아카데미 7개 부문 수상.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력에서도 손꼽힐 만한 성적입니다. 하지만 제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박힌 건 그런 숫자가 아닙니다. 영화 속에서 첫 핵실험 장면이 다가올 때, 그 넓은 객석 전체가 약속이나 한..
아카데미 역사상 딱 세 번밖에 없었던 기록이 있어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색상을 한 영화가 싹 다 쓸어간 거죠. 그중 하나가 바로 1991년작 '양들의 침묵'입니다. 이런 대단한 이력을 가진 영화인데, 정작 저는 아주 우연히 만났어요. 그날도 별생각 없이 늦은 밤 케이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장면에서 손이 멈췄는데, 그게 '양들의 침묵'이었습니다. 처음엔 '이거 뭐지, 좀 무서운데' 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한니발 렉터가 화면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 아예 리모컨을 내려놨어요. 뭐랄까, 그 배우가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 그냥 서 있기만 하는데도 화면 전체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달까요. 결국 그날 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