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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6억 9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입니다.
2023년 6월 한국 개봉 첫 주에, 저도 친구랑 큰 상영관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런데 첫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어, 이거 뭔가 다른데?' 싶더라고요. 화면이 그냥 애니메이션이 아니었거든요. 만화책 페이지가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림 스타일이 장면마다 확확 바뀌는데 그게 어지럽기는커녕 눈이 즐거운 거예요. 옆에 있던 친구도 저도 한동안 말없이 화면만 봤어요. 다 보고 나와서는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소리부터 나왔고요.
이 영화가 첫 장면부터 뭘 어떻게 다르게 했길래 그렇게 느껴졌는지, 줄거리랑 기억에 남는 장면, 그리고 직접 보고 내린 제 총평까지 지금부터 하나씩 편하게 풀어볼게요.
줄거리 — 마일스 모랄레스가 마주한 세계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전작 '인투 더 스파이더버스'가 끝난 지 약 1년 뒤의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호아킴 도스 산토스, 켐프 파워스, 저스틴 톰슨 세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고,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가 제작을 지휘했습니다. 제가 전작을 극장에서 본 게 2018년이었으니, 5년 만에 후속 편을 다시 마주한 셈이었습니다. 그 간격 탓인지 첫 장면부터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주인공 마일스 모랄레스(샤메익 무어)는 브루클린에서 스파이더맨으로 활동하면서도 부모님에게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의 몸에 생긴 구멍으로 여러 우주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빌런 스폿(제이슨 슈워츠먼)과 충돌하게 됩니다. 스폿의 능력은 단순히 공간을 뚫는 수준이 아니라 멀티버스 전체에 균열을 일으키는 위협적인 것이었습니다. 멀티버스란 서로 다른 물리 법칙과 역사를 가진 무수히 많은 평행 우주가 공존하는 개념으로, 이 영화의 모든 갈등이 그 위에서 펼쳐집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일스는 그웬 스테이시(헤일리 스타인펠드)의 안내를 받아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란 여러 우주의 스파이더맨들이 멀티버스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으로, 스파이더맨 2099 미겔 오하라(오스카 아이작)가 이끌고 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면면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 마일스 모랄레스 — 흑인·라틴계 청소년 스파이더맨, 샤메익 무어 목소리
- 스파이더 그웬 — 다른 우주 출신, 헤일리 스타인펠드 목소리
- 스파이더맨 2099 미겔 오하라 — 스파이더 소사이어티 리더, 오스카 아이작 목소리
- 스파이더펑크 호비 브라운 — 저항과 반권위의 아이콘, 다니엘 칼루야 목소리
- 피터 B. 파커 — 전작에서 이어진 베테랑 스파이더맨, 제이크 존슨 목소리
명장면 — 화면이 감정을 그리는 순간들
제가 직접 보면서 자세를 바로 세웠던 건 도입부 그웬 스테이시의 회상 시퀀스였습니다. 그웬의 감정 상태에 따라 배경 색채가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방식인데, 이것을 인상주의(Impressionism) 화풍으로 구현했습니다. 인상주의란 빛과 색채의 순간적인 변화를 포착해 감정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표현 양식으로, 이 영화는 그 감각을 디지털 애니메이션에 그대로 이식했습니다. 슬픔이 짙어질수록 화면이 차갑고 어두운 색으로 물들고, 감정이 터지는 순간엔 색이 폭발하듯 번지는 그 결이, 저로서는 꽤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았습니다.
또 하나, 마일스와 그웬이 브루클린 옥상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짧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사 자체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두 인물 사이의 거리감과 신뢰가 동시에 느껴지는 이 장면이, 제 경험상 영화 전체의 온도를 가장 잘 담아낸 지점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배우의 표정 대신 프레임 구성과 색으로 감정을 전달한다는 사실이 이 장면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후반부의 스파이더 소사이어티 추격 시퀀스입니다. 서로 다른 아트 스타일(Art Style)로 제작된 수백 명의 스파이더맨이 한 화면 안에 동시에 등장합니다. 아트 스타일이란 작품마다 고유하게 적용되는 시각적 표현 방식을 뜻하는데, 코믹북 망점, 수채화 질감, 점묘법, 3D 렌더링이 한 프레임 안에서 충돌하면서도 통일감을 유지하는 이 결이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상영관 객석 곳곳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던 그 순간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다니엘 펨버튼이 맡은 음악이 그 위에 덧입혀지면서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폭발하는 경험이었습니다(출처: IMDb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작품 정보).
캐넌 이벤트 — 운명이냐 선택이냐
이 영화의 진짜 갈등은 스폿이 아니라 미겔 오하라가 꺼내 드는 개념에 있습니다. 바로 캐넌 이벤트(Canon Event)입니다. 캐넌 이벤트란 각 우주의 스파이더맨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정해진 결정적 사건을 뜻합니다. 예컨대 가까운 경찰관의 죽음처럼,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해당 우주 자체가 붕괴한다는 논리입니다. 미겔은 이 법칙을 지키는 것이 멀티버스 전체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마일스는 자신의 아버지 제퍼슨 데이비스가 바로 그 캐넌 이벤트의 희생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이렇게 정면으로 "운명에 따르라"는 요구가 주인공에게 날아드는 구조는 흔하지 않습니다. 마일스가 그 결을 거부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단순한 액션 애니메이션을 넘어 자유의지 대 결정론이라는 철학적 물음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스파이더펑크 호비 브라운은 이 구조에 가장 먼저 균열을 냅니다. 그는 조직의 논리를 따르는 대신 마일스의 선택을 지지하며 이탈합니다. 저항과 반권 위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설정된 만큼, 그의 등장 자체가 캐넌 이벤트 시스템에 대한 반론처럼 읽혔습니다. 흑인이자 라틴계 청소년인 마일스의 정체성,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스파이더펑크의 존재가 이 영화 안에서 단순한 캐릭터 배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출처: 위키백과 —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총평 — 걸작이되, 한 가지 아쉬움
영화가 끝나고 친구와 한참을 로비에 서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일스의 마지막 선택이 옳은 건지, 미겔의 논리가 완전히 틀린 건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방증이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2024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오른 것도 이 복합적인 층위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세 감독의 세계관 설계, 다니엘 펨버튼의 음악, 그리고 서로 다른 아트 스타일이 한 편 안에 공존하는 비주얼 디자인에 대해서는 솔직히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인터내셔널 박스오피스(International Box Office), 즉 전 세계 극장 상영 수익을 기준으로 약 6억 9천만 달러라는 수치도 이 작품의 흡인력을 숫자로 증명합니다.
다만 약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은 제 경우엔 후반부에서 다소 무게감으로 느껴졌습니다. 클리프행어(Cliffhanger) 방식으로 끝나는 결말도 짚어야 합니다. 클리프행어란 결말을 의도적으로 미해결 상태로 남겨 후속 편에 대한 기대를 유발하는 서사 기법인데, 이 경우엔 그 기다림이 다소 길게 늘어졌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후속 편 '비욘드 더 스파이더버스'로 완결될 이야기이니 그 아쉬움을 완전히 해소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전작 인투 더 스파이더버스를 먼저 봐야 하나요?
A. 제 경험상 전작을 보고 오는 게 훨씬 낫습니다. 마일스 모랄레스가 어떻게 스파이더맨이 됐는지, 피터 B. 파커나 그웬과 어떤 인연을 쌓았는지가 이 영화의 감정선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전작 없이 보면 캐릭터 관계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Q. 캐넌 이벤트가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A. 영화 안에서 각 우주의 스파이더맨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결정적 사건을 뜻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해당 우주 자체가 붕괴한다는 논리인데, 미겔 오하라가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를 운영하는 근거로 삼는 개념입니다. 마일스가 이 법칙을 거부하면서 영화의 핵심 갈등이 시작됩니다.
Q.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후속편은 언제 나오나요?
A. 후속편 '비욘드 더 스파이더버스'로 이야기가 완결될 예정입니다. 다만 제 글 작성 시점 기준으로 정확한 개봉일은 아직 확정 발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최신 정보는 소니 픽처스 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하시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Q.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아이들이랑 같이 봐도 괜찮은 영화인가요?
A. 직접 보니 액션 수위는 높지 않고 폭력적인 장면도 없습니다. 다만 운명, 부모와 자식의 갈등, 정체성 같은 주제가 꽤 묵직하게 다뤄지기 때문에 어린 아이보다는 초등 고학년 이상에서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결론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실사 영화가 따라올 수 없는 방식으로 감정을 색채와 아트 스타일로 시각화하는 것, 그 가능성을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정점에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삶이 정해진 운명이 아닌 스스로의 결심으로 만들어진다는 주제는, 마일스 모랄레스라는 캐릭터를 통해 세대를 가리지 않고 전달됩니다.
러닝타임이 길고 클리프행어로 끝난다는 아쉬움이 있어도, 이 영화를 한 번쯤 큰 화면으로 마주해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전작 '인투 더 스파이더버스'부터 순서대로 보고 이어가는 것을 저는 권하고 싶습니다. 후속 편 '비욘드 더 스파이더버스'와 함께 완결될 이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저도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