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짜리 영화라고 하면 저는 일단 겁부터 납니다. 극장에서 그 긴 시간을 끝까지 집중해서 본 적이 손에 꼽거든요. 중간에 한 번쯤은 시계를 보게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오펜하이머'는 달랐습니다. 2023년 여름, 개봉 첫 주말에 제일 큰 상영관에서 친구와 나란히 앉아 봤는데, 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길, 저희 둘 다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무슨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그런 침묵이었죠. 전 세계 흥행 10억 달러, 아카데미 7개 부문 수상.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력에서도 손꼽힐 만한 성적입니다. 하지만 제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박힌 건 그런 숫자가 아닙니다. 영화 속에서 첫 핵실험 장면이 다가올 때, 그 넓은 객석 전체가 약속이나 한..
아카데미 역사상 딱 세 번밖에 없었던 기록이 있어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색상을 한 영화가 싹 다 쓸어간 거죠. 그중 하나가 바로 1991년작 '양들의 침묵'입니다. 이런 대단한 이력을 가진 영화인데, 정작 저는 아주 우연히 만났어요. 그날도 별생각 없이 늦은 밤 케이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장면에서 손이 멈췄는데, 그게 '양들의 침묵'이었습니다. 처음엔 '이거 뭐지, 좀 무서운데' 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한니발 렉터가 화면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 아예 리모컨을 내려놨어요. 뭐랄까, 그 배우가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 그냥 서 있기만 하는데도 화면 전체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달까요. 결국 그날 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솔직히 저는 《기생충》을 처음 볼 때 '이 영화가 나에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올 줄' 몰랐습니다. 반지하 창문 너머 골목이 화면에 잡히던 그 첫 장면에서, 저는 예상치 못한 숨 멎음을 느꼈습니다. 한때 직접 반지하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그 습한 공기와 낮게 깔린 시선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아봅니다.반지하 경험이 만든 계급 연출, 일반적 해석과 제가 느낀 것의 차이 일반적으로 《기생충》의 핵심 장치로 '계단'과 '냄새'가 꼽힌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두 가지는 사실 하나의 감각으로 연결됩니다. 반지하에 실제로 살아본 사람에게 계단이란 그냥 오르내리는 구조물이 아닙니다. 지상으로 올라갈수록 빛이 늘어나고, 내려갈수록 습기와 냄새가 짙어지는 그 수직 감각이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