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한 로맨스 영화 없나 뒤적이다 보면, 꼭 한 번은 마주치는 제목이 있죠. 주변에서도 "그건 진짜 봐야 돼" 소리를 오래 들었던 작품. 저한테는 닉 카사베츠 감독의 2004년작 '노트북'이 그랬어요.제가 이걸 처음 본 건 학창 시절이었어요. 친구랑 DVD를 빌려다가 거실에서 봤죠. 솔직히 그때만 해도 '뻔한 연애 이야기겠지' 싶었어요. 근데 도입부 10분도 안 지났는데 벌써 화면에서 눈을 못 떼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다 보고 나서는, 제가 생각했던 그런 영화가 전혀 아니었다는 걸 알았어요. 그냥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이야기가 되어 있더라고요. 뭐랄까,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시간에 관한 이야기에 가까웠달까요. 친구랑 둘이서 한참을 아무 말도 ..
평일 저녁이었습니다. 아이맥스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톰 크루즈가 탄 오토바이가 돌로미티 절벽 끝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치던 그 순간. 저는 지금도 그때 객석을 기억합니다. 팝콘 씹는 소리조차 멎었거든요. 몇백 명이 같은 숨을 참고 있는 듯한, 그 짧고 팽팽한 정적 말입니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은 2023년 7월 극장에 걸렸습니다. 전 세계 5억 6,700만 달러.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이라면 슬슬 관성에 기댈 법도 한데, 이 영화는 오히려 한 계단을 더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았죠. 저 역시 극장을 나서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 아직도 진심이구나 하고요.줄거리 — 열쇠 하나를 둘러싼 세계의 충돌영화의 출발점은 '엔티티(Entity)'라는 자율 AI입니다. 여기서 자율 ..
그날은 그냥 마블 신작 한 편을 보러 간 게 아니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스파이더맨이라는 이야기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러 간 기분이었죠. 토비 맥과이어부터 앤드류 가필드까지, 극장에서 스파이더맨과 함께 자란 세대에게 '노 웨이 홈'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일종의 동창회 같은 거였습니다. 그 두근거림이 지금도 손끝에 남아 있습니다. 극장을 나서는데 아무 말도 안 나오더군요.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 전까지, 히어로 영화가 사람 마음에 이렇게 오래 남는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화려하고, 시원하고, 극장 문을 나서면 잊히는 것. 딱 그 정도라고 여겼죠. 개봉 첫 주말, 친구들과 큰 상영관에 자리를 잡았을 때만 해도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아버지가 그 영화를 그렇게 기다리셨는지,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탑건: 매버릭' 이야기입니다. 평소 극장 나들이라곤 거의 안 하시던 분이, 어느 날 먼저 "이건 같이 보러 가자"고 하시더군요. 알고 보니 1986년 원작 '탑건'이 아버지의 젊은 시절 한 페이지였던 겁니다. 저는 그런 사연도 모른 채, 그냥 오랜만에 액션 블록버스터나 한 편 보는 자리겠거니 했죠.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옆을 슬쩍 봤더니 아버지 표정이 평소와 달랐습니다. 36년이라는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만난 매버릭이, 아버지에게는 단순한 속편이 아니었던 거죠. '탑건: 매버릭'은 2022년 전 세계 14억 달러, 한국에서만 822만 명을 모은 흥행작입니다. 하지만 그날 제게 오래 남은 건 그 숫자가 아니라, 극장을 나서..
그날 극장 앞 풍경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매표소 앞에 늘어선 줄의 절반쯤이 약속이나 한 듯 핑크색 옷을 맞춰 입고 있었거든요. 분홍색 원피스, 분홍색 모자, 심지어 분홍색 운동화까지. 영화 한 편 보러 온 게 아니라 무슨 축제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죠. 저도 그날 친구들과 그 줄 어딘가에 서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만 해도 '뭘 이렇게까지들 입고 왔지' 싶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더군요. 그레타 거윅 감독의 '바비'는 전 세계 14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2023년 여름을 통째로 집어삼킨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두고 사람들 반응이 참 갈립니다. "그냥 인형 가지고 만든 가벼운 영화 아니야?" 하는 분도 계시고, "이건 한 시대를 제대로 건드린 작품이다" 하고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