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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애니메이션 하면 다들 포근하고 따뜻한 걸 떠올리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근데 '모노노케 히메'는 그 기대를 도입부 5분 만에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깨버리는 영화예요.
제가 이걸 처음 본 건 친구네 집 거실에서 DVD로였어요. 지브리니까 당연히 훈훈한 이야기겠거니 하고 편하게 기대앉았죠. 근데 초반에 저주받은 멧돼지 신이 시커먼 촉수 같은 걸 마구 뿜어내면서 등장하는 장면에서, 저는 순간 숨이 턱 멎었어요. '어? 이거 내가 알던 지브리가 아닌데?' 싶었죠. 옆에 있던 친구랑 서로 쳐다보면서 "이거 애들 보는 거 맞아?" 했던 기억이 나요.
이 영화는 1997년에 나와서 당시 일본 역대 흥행 1위 기록을 갈아치운 작품이에요. 근데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한 번 봤을 땐 다 이해를 못 했어요. 뭔가 묵직한 걸 던지는 건 알겠는데 그게 정확히 뭔지 잡히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한 번 더 봤죠. 두 번째로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오래 회자되는지 조금씩 알겠더라고요.
이 영화가 그 포근할 거라던 기대를 깨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던 건지, 두 번이나 보게 만든 그 힘이 뭐였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편하게 풀어볼게요.
줄거리와 배경 — 15세기 무로마치 시대가 무대인 이유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연출하고 1997년 7월 일본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판타지 영화입니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를 배경으로 하는데, 무로마치 시대란 14세기 중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이어진 일본의 봉건 시대로, 철기 문화와 자연 개발이 본격적으로 맞부딪히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감독이 굳이 이 시대를 택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연을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하는 그 '경계의 시간'을 배경으로 삼아야 이야기의 무게가 살아난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에미시 부족의 젊은 왕자 아시타카(성우: 마츠다 요지)는 저주받은 멧돼지 신과 싸우다 팔에 타타리가미(祟り神)의 저주를 입습니다. 타타리가미란 원한과 증오가 응어리진 신령이 변질된 존재로, 쉽게 말해 '분노가 극에 달해 신성을 잃어버린 재앙의 화신'입니다. 저주를 풀 방법을 찾아 서쪽으로 향한 아시타카는 타타라 마을에 다다릅니다.
타타라 마을은 여성 지도자 에보시(성우: 다나카 유코)가 이끄는 제철 공동체입니다. 숲을 허물어 철을 생산하는 이 마을과, 숲을 지키기 위해 늑대신에게 길러진 인간 소녀 산(모노노케 히메, 성우: 이시다 유리코)이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그 사이에 아시타카가 서 있습니다. 어느 한쪽 편도 들지 않은 채 '함께 살아갈 길'을 찾으려 하는 인물로서 요. 성우진과 제작 정보는 출처: 네이버 영화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에미시 부족 왕자 아시타카 — 저주를 안고 중립의 자리에 선 주인공
- 산(모노노케 히메) — 늑대신 모로에게 길러진 인간 소녀, 숲의 수호자
- 에보시 — 타타라 마을의 지도자, 약자를 품으면서도 숲을 파괴하는 인물
- 지코보 — 시시가미의 머리를 노리는 승려, 인간의 탐욕을 대변
- 시시가미(데이다라봇치) — 낮에는 사슴 신, 밤에는 거대한 생명의 신으로 변하는 숲의 정점
명장면 분석 — 시시가미의 죽음이 남긴 것
제가 두 번째로 이 영화를 봤을 때, 시시가미(シシ神)의 목이 잘리는 시퀀스에서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시시가미란 숲 전체의 생사를 관장하는 신령으로, 낮에는 사슴의 형태로, 밤에는 반투명한 거대 존재 데이다라봇치(ダイダラボッチ)로 변합니다. 데이다라봇치란 일본 민간 설화에 등장하는 거신(巨神) 개념을 가져온 것으로, 쉽게 말해 산과 강을 손으로 빚어낼 만큼 거대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히사이시 조 작곡가의 음악이 깔리며 이 존재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장면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이토록 숭고한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후반부 시시가미의 목이 잘리면서 검은 액체가 숲과 마을을 뒤덮는 대재앙 시퀀스는, 영화 전체의 긴장이 한꺼번에 터지는 결정적 장면입니다. 그날 친구네 거실에서 저와 친구 모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화면이 어두워지고 검은 것이 스크린을 채우는 그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감독이 의도한 침묵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시시가미의 머리가 되돌아오고 죽어가던 숲이 다시 초록빛을 되찾는 짧은 시퀀스. 제 경험상 이 장면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무거운 이야기 끝에 억지로 해피엔딩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작은 회복을 보여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스튜디오 지브리 특유의 색감이 그 어느 장면보다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작품의 전체 정보는 출처: IMDb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와 총평 — 회색 세계관이 왜 지금도 유효한가
'모노노케 히메'가 다른 지브리 작품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은 선악 이분법을 완전히 걷어냈다는 데 있습니다. 숲을 허무는 에보시는 나병 환자와 유녀(遊女)들을 거두고 인간적으로 보살피는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자연을 지키는 산과 늑대신 모로는 인간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고, 인간의 언어조차 거부합니다. 어느 편이 옳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 구도, 이것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정직한 세계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결코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으며, 오직 함께 살아가겠다는 결심만이 남는다.' 아시타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결심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에 이 영화를 볼 때는 그 결심이 너무 모호하게 느껴졌는데, 성인이 되어 다시 보니 그 모호함 자체가 이 작품의 가장 정직한 답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비판할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세계관이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어린 관객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고, 폭력 묘사의 수위도 아동 애니메이션의 범주를 훌쩍 넘습니다. 일반적으로 지브리 작품은 전 연령이 즐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작품만큼은 어느 정도 삶의 맥락이 생긴 뒤에 보는 편이 훨씬 깊이 다가옵니다. 흥행 기록과 작품 배경에 관한 상세한 자료는 위키백과에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모노노케 히메는 몇 살부터 볼 수 있나요?
A. 공식 등급 기준으로는 전체 관람가에 해당하지만, 팔이 잘리는 장면이나 시시가미의 죽음 시퀀스 등 폭력 묘사가 꽤 강합니다. 제 경험상 초등학교 저학년보다는 중학생 이상, 혹은 부모님과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에서 보는 편이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Q. 시시가미와 데이다라봇치는 같은 존재인가요?
A. 같은 존재의 두 가지 형태입니다. 시시가미는 낮에 사슴의 모습으로 숲 속을 걷는 생명의 신이고, 데이다라봇치는 밤이 되면 반투명한 거대 존재로 변한 형태입니다. 일본 민간 설화의 거신 개념에서 가져온 설정으로, 자연의 이중성 — 온화함과 압도적인 힘 — 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한 연출입니다.
Q. 결말에서 산과 아시타카는 어떻게 되나요?
A. 시시가미의 머리가 돌아오고 숲이 회복된 뒤, 아시타카는 타타라 마을을 재건하는 쪽을 택하고 산은 숲으로 돌아갑니다. 두 사람은 완전히 하나의 자리로 합쳐지지 않습니다. '함께이지만 각자의 자리에 선다'는 이 결말이 작품 전체의 메시지와 일관성 있게 연결됩니다.
Q. 모노노케 히메 흥행 성적은 어떻게 되나요?
A. 1997년 일본 개봉 당시 약 193억 엔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그해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일본 역대 흥행 신기록이었으며,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의 위상을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결론
'모노노케 히메'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 안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토록 정직하게 들여다본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보고 난 뒤에도 한동안 생각이 끊이지 않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남습니다. 그 질문이 1997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자연과 환경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게 되는 날이 있다면, 혹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아직 이 작품을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하면 큰 화면으로 히사이시 조 작곡가의 음악을 온전히 들으면서 한 번 시작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처음엔 무겁게 느껴지더라도, 끝까지 보고 나면 그 무게가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참고: 네이버 영화 — 작품 정보, 성우진, 제작진 정보 / 위키백과 — 영화 일반 정보, 흥행 기록 / IMDb — 외국 영화 평점 및 작품 정보 / 씨네 21 — 외국 영화 리뷰 및 비평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