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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랑 꿈, 둘 다 쥐면 안 되는 걸까요?
2016년 12월이었어요. 대학 친구랑 개봉 첫 주에 큰 상영관을 잡고 앉았죠. 그리고 도입부, 그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사람들이 차 밖으로 뛰쳐나와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이 펼쳐지는데, 저도 모르게 등을 꼿꼿이 세우고 있더라고요. 영화 시작한 지 5분도 안 됐는데 벌써 '아, 이거 물건이다' 싶었죠.
그리고 엔딩이 지나간 뒤에는 정반대였어요. 한참을 의자에서 일어나질 못했거든요. 시작할 땐 그렇게 붕 뜨게 만들더니, 끝날 땐 사람 마음을 이렇게 가라앉혀 놓는구나 싶었어요. 옆에 앉은 친구도 말이 없었고요. 둘 다 뭔가 할 말은 많은데 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상태였던 것 같아요.
'라라랜드'는 그런 영화예요. 사람을 한껏 들뜨게 했다가, 마지막엔 조용히 앉혀놓는 영화요. 이 영화가 그 질문을 어떻게 던지고 어떻게 마무리하는지, 그날 저희 둘을 그렇게 오래 자리에 붙들어놓은 게 뭐였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편하게 풀어볼게요.
명장면으로 읽는 라라랜드
흔히 뮤지컬 영화라고 하면 배우들이 갑자기 노래를 시작하는 어색함을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솔직히 그런 편견을 품고 상영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그 어색함을 아예 축제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LA 101번 프리웨이에서 수십 명의 배우들이 차 위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Another Day of Sun' 시퀀스는, 뮤지컬 영화의 미장센(mise-en-scène)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를 단번에 증명했습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세트, 카메라 앵글이 만들어내는 총체적인 분위기를 가리킵니다. 단 한 컷에 LA 전체를 담아낸 그 설계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은 그리피스 천문대의 'Planetarium' 시퀀스입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중력을 벗어나 별빛 사이를 떠다니며 왈츠를 추는 그 짧은 시간은, 장르적 문법을 완전히 초월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뮤지컬 영화가 현실과 환상 사이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시퀀스가 가장 조용하고 눈부시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후반부 'Audition (The Fools Who Dream)'은 또 다른 결로 마음을 파고듭니다. 엠마 스톤 배우가 오랜 좌절 끝에 자신의 이모 이야기를 담담하게 노래로 풀어내는 이 시퀀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안긴 장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저는 이 장면에서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처음으로 명확하게 느꼈습니다. 꿈을 향해 계속 걸어가는 사람들, 이른바 '바보들의 꿈'에 대한 찬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찬사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게, 아주 지치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달됩니다.
저스틴 후르위츠 작곡가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화 전편을 관통하는 테마 멜로디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f) 기법으로 반복 변주됩니다. 라이트모티프란 특정 인물이나 감정을 상징하는 짧은 음악 동기를 반복적으로 등장시켜 관객의 정서를 축적하는 작곡 기법입니다. 처음엔 설레는 피아노 선율로, 이별 즈음엔 조금 더 쓸쓸하게, 에필로그에선 'Epilogue'라는 이름으로 모든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냅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의 음악을 OST로 따로 꺼내 들으면, 장면이 없어도 감정이 그대로 돌아옵니다.
- 도입부 'Another Day of Sun': LA 프리웨이 원테이크 뮤지컬 시퀀스, 미장센의 결정판
- 'Planetarium': 그리피스 천문대 공중 왈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지운 명장면
- 'Audition (The Fools Who Dream)': 엠마 스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근거가 된 독백 시퀀스
- 에필로그 'Epilogue': 저스틴 후르위츠 라이트모티프 기법의 정점, 짧은 미소로 마무리되는 재회
라라랜드의 메시지와 총평
이 영화가 결국 해피엔딩이냐 아니냐를 놓고 친구들과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각자 꿈을 이뤘으니 해피엔딩"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고, "사랑을 잃었으니 새드엔딩"이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두 번, 세 번 보면서 내린 결론은, 이 영화는 그 질문 자체를 의도적으로 열어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꿈도 모두 쥘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 결심이 한 인간의 삶을 만든다는 것을 조용히 보여줄 뿐입니다.
영화가 할리우드 뮤지컬 황금기에 대한 오마주(hommage)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맥락입니다. 오마주란 선배 예술가나 작품에 경의를 표하며 그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인용하거나 재현하는 창작 방식을 의미합니다. 프레드 아스테어, 진 켈리 시대의 뮤지컬 문법을 2016년 감각으로 다시 빚어낸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선택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할 거리가 됩니다. 단순히 옛것을 모방한 게 아니라, 지금 시대에 왜 이 형식이 필요한지를 영화 안에서 설득해 낸 것입니다(출처: IMDb).
다만 비판적으로 볼 부분도 있습니다. 재즈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소 낭만화되어 있다는 지적은 솔직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세바스찬이 재즈를 지키겠다며 대중음악에 등을 돌리는 태도는, 재즈라는 장르가 실제로 걸어온 역사적 맥락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재즈는 원래 끊임없이 변화하며 대중과 호흡해 온 음악이니까요. 영화가 이 부분을 다소 단순화했다는 비판은 유효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하고, 한국에서만 약 359만 명을 동원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출처: 위키백과). 꿈을 좇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제 경우엔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지는 미아의 표정이 그랬습니다. 화면 속 그 표정이, 제가 무언가를 반복해서 시도하다 지쳤던 순간들과 조용히 겹쳤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라라랜드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새드엔딩인가요?
A. 해피엔딩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고, 새드엔딩이라고 느끼는 분들도 많습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각자의 꿈을 이루지만 함께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 선택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보는 사람에게 질문을 그대로 돌려줍니다. 저는 여러 번 보면서도 매번 조금씩 다르게 느꼈습니다.
Q. 라라랜드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직접 피아노를 친 건가요?
A. 네, 라이언 고슬링은 영화 촬영 전 수개월간 피아노를 집중 훈련하여 실제로 직접 연주했습니다. 이 부분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제작진과 배우 본인이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사실입니다. 화면 속 손 클로즈업 장면도 대역 없이 라이언 고슬링의 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Q. 라라랜드 OST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어떤 건가요?
A. 'City of Stars'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스틴 후르위츠가 작곡한 이 곡은 영화 초반부터 에필로그까지 반복 변주되어, 라이트모티프 기법의 핵심 역할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Mia & Sebastian's Theme'가 더 오래 머리에 남습니다.
Q. 라라랜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추천할 만한가요?
A. 뮤지컬 영화를 낯설게 느끼는 분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노래와 춤이 감정의 과장이 아니라 감정의 집약으로 쓰이기 때문에, 장르에 익숙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됩니다. 다만 깔끔한 해피엔딩을 원하는 분께는 다소 여운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론
라라랜드는 뮤지컬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 하는 이야기는 훨씬 오래된 주제입니다. 사랑과 꿈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제 경험상 이 질문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묵직하게 돌아옵니다. 처음 봤을 때는 미아와 세바스찬의 이별이 안타까웠는데, 몇 년 뒤 다시 봤을 때는 그 이별이 오히려 담담하게 느껴졌습니다. 같은 영화가 보는 시점에 따라 다른 결로 다가온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밤 이 영화의 OST를 다시 꺼내 듣고 싶어지는 날이 온다면, 그냥 틀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감각이 남아 있다면, 다시 한번 처음부터 영화를 마주해도 좋은 타이밍이라는 신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