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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극장에서 눈물이 날 거라곤 전혀 생각 못 했어요. 그냥 20년도 더 된 옛날 만화, 추억이나 한번 꺼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간 거였거든요. 근데 오프닝이 시작되고 채 2분도 안 돼서 벌써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데 말이에요.
2023년 1월, 한국 개봉 첫 주였어요. 옆자리엔 학창 시절 이 만화를 같이 돌려 읽던 친구가 앉아 있었죠. 하필 그 친구랑 같이 봐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시절 쉬는 시간마다 만화책 서로 먼저 보겠다고 다투던 기억이 스크린 위로 겹쳐지는데, 그게 참 묘하더라고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면서, 한 작품이 이렇게 세월을 건너 다시 우리 앞에 온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그날 처음 몸으로 알았어요. 나이 든 건 우린데, 그 코트 위 아이들은 여전히 그대로더라고요.
이 영화가 20년도 더 된 이야기를 대체 어떻게 다시 살려냈길래 다 큰 어른을 이렇게 울리는지, 그날 저랑 친구를 나란히 먹먹하게 만든 게 뭐였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편하게 풀어볼게요.
줄거리와 제작 배경 — 원작자가 직접 지휘봉을 잡은 이유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1990년대 연재된 원작 만화 '슬램덩크'를 바탕으로,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감독과 각본을 맡아 2022년 12월 일본에서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입니다. 여기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란 TV 시리즈와 달리 극장 상영을 전제로 처음부터 새롭게 기획·제작된 장편 작품을 의미합니다. 원작자가 연출까지 직접 맡는 사례는 애니메이션 산업에서도 드문 일이라, 개봉 전부터 팬들 사이에서 기대와 긴장이 공존했습니다.
흥행 결과는 꽤 명확하게 그 기대에 답했습니다. 전 세계 누적 수익이 약 2억 8천만 달러에 달했고(출처: 위키백과), 일본 연간 흥행 1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에서만 약 470만 명을 동원한 수치는 단순한 향수 마케팅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숫자입니다. 저도 그 470만 명 중 한 명이었는데, 극장에서 그 인파를 보며 '이 작품이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니구나'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영화의 서사 구조는 원작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았던 포인트 가드, 미야기 료타를 중심에 놓습니다. 포인트 가드란 농구에서 공격의 시작점이 되는 포지션으로, 팀 전체의 흐름을 읽고 조율하는 역할을 합니다. 영화는 오키나와에서 자란 료타가 형 소타를 사고로 잃고, 편모 가정에서 농구를 통해 자신을 버텨온 과정을 회상 시퀀스로 풀어냅니다. 이 회상과 원작 최대의 하이라이트인 인터하이 산왕공고 전이 교차되는 구조가 영화 전체의 긴장을 끝까지 유지시켜 줍니다.
인터하이(Inter-high)란 일본 전국 고등학교 체육대회를 뜻하는 말로, 쉽게 말해 우리나라의 전국 고교 선수권 대회에 해당합니다. 원작 팬들에게는 슬램덩크의 사실상 최종 결전으로 기억되는 무대입니다. 성우진은 나카무라 슈고(미야기 료타), 키무라 스바루(강백호), 카미오 신이치로(서태웅), 카사마 준(정대만), 미야케 켄타(채치수)로 구성되었으며, 록 밴드 10-FEET가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 감독·각본: 이노우에 다케히코 (원작자 직접 연출)
- 개봉: 2022년 12월 일본 / 2023년 1월 한국
- 전 세계 흥행: 약 2억 8천만 달러, 일본 연간 1위
- 한국 관객 수: 약 470만 명
- 음악: 록 밴드 10-FEET, 타이틀곡 'The First Slam Dunk'
명장면과 총평 — 팬이라면 이 장면에서 버티기 어렵습니다
가장 자주 이야기되는 명장면은 오프닝 시퀀스입니다. 흰 종이 위로 다섯 명의 선수가 이노우에 다케히코 특유의 필체로 하나씩 스케치되듯 그려지다가 코트로 걸어 나오는 그 짧은 장면인데, 저는 이 시퀀스에서 이미 감정이 무너졌습니다. 만화의 선(線)이 그대로 살아 움직인다는 감각이 이렇게까지 충격적일 줄은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냥 그림 아니냐"라고 볼 수도 있는데, 저는 그게 바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연출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팬 입장에서는 그 선 하나하나가 20년의 기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반부 산왕공고 전 마지막 30초 시퀀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배경음악이 완전히 사라지고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관중석의 정적만 남습니다. 음향 연출(사운드 디자인)이란 영상의 몰입감을 좌우하는 소리의 설계 방식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음악을 빼는' 결정으로 오히려 가장 강렬한 긴장감을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앉았던 객석 전체가 그 순간 동시에 조용해지는 걸 느꼈는데, 그 감각은 어떤 말로도 완전히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미야기 료타의 오키나와 회상 시퀀스는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부분입니다. 어린 시절 형과 함께 농구공을 튀기던 짧은 순간, 형을 잃은 뒤 어머니와 나누는 오랜 침묵. 이 회상 장면들이 록 밴드 10-FEET의 서정적인 타이틀곡과 맞물리면서, 산왕전의 긴장이 단순한 스포츠 승부 이상의 결로 깊어집니다(출처: IMDb).
비판적으로 볼 지점도 분명 있습니다. 미야기 중심의 재구성에 대해 "다른 캐릭터 팬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다"라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이 지적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채치수나 정대만의 서사를 기대하고 들어간 분들이라면 다소 허전할 수 있습니다. 또 원작을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등장인물과 배경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 들 수 있다는 점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포츠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안에서 이 정도의 서사 밀도와 연출 수준을 보여준 작품은 제 경험상 손에 꼽습니다.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퍼스트 슬램덩크, 원작 만화를 안 봐도 재미있나요?
A. 원작을 모르는 분들도 스포츠 영화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등장인물 관계나 배경을 모르면 초반 정보량이 다소 부담스럽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원작을 알고 보면 감동의 층위가 확실히 달라지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하이라이트 줄거리 정도만 훑고 보시길 권합니다.
Q. 왜 주인공이 강백호가 아니라 미야기 료타인가요?
A.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이 원작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미야기 료타의 서사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결과입니다. 이 선택이 기존 팬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 구성 덕분에 원작을 이미 아는 관객도 새로운 감정으로 영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Q.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음악이 좋다던데, 어떤 밴드인가요?
A. 일본 록 밴드 10-FEET가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타이틀곡 'The First Slam Dunk'는 영화의 감정선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데, 록의 에너지와 서정성이 함께 담겨 있어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Q. 한국에서 이렇게 흥행한 이유가 뭔가요?
A. 약 470만 명이라는 수치는 단순한 향수 마케팅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고 봅니다. 1990년대 슬램덩크 원작 만화를 읽으며 자란 세대가 극장에서 다시 마주하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었고, 거기에 완성도 높은 연출과 음악이 더해지면서 입소문이 빠르게 퍼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영화가 끝나고 친구와 한참 동안 학창 시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만화책을 돌려 읽던 교실, 그 안에 끼워 넣었던 감정들이 20년이 지나 극장 안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그런 영화입니다. 스포츠 서사의 긴장감과 한 인물의 상실, 그리고 세대를 건너온 기억이 한 자리에 모인 작품입니다.
원작을 모르는 관객에게 다소 가파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 미야기 중심 재구성이 일부 팬에게 아쉬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스포츠와 성장, 그리고 상실에 관해 이 정도 깊이로 이야기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제 경험상 흔하지 않습니다. 어느 조용한 날 이 영화를 처음 보거나 다시 꺼내보고 싶어 진다면,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