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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손 잡고 극장 들어갔다가 정작 본인이 울컥해 본 적, 있으세요? 저는 2014년 1월에 딱 그랬어요.
그날은 순전히 조카 때문에 간 거였어요. 아이가 이 영화를 그렇게 보고 싶어 한다길래, 삼촌 노릇 좀 하자는 마음으로 따라 들어간 거죠. 솔직히 저는 '애들 영화 한 편 보고 나오겠지' 하고 별 기대가 없었어요. 근데 영화가 중반쯤 흐르는데, 전혀 예상 못 한 대목에서 갑자기 목이 메어오는 거예요. 옆에서 신나서 화면만 보고 있는 조카한테 들킬까 봐, 어두운 극장 안에서 몰래 눈가를 훔쳤던 기억이 나요. 다 큰 어른이 애니메이션 보다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좀 민망하기도 했고요.
'겨울왕국'은 2013년에 나와서 전 세계 12억 8천만 달러를 벌며 당시 애니메이션 역대 1위에 올랐고, 한국에서만 1,029만 명을 모아 애니메이션 최초로 천만 관객을 넘긴 작품이에요. 숫자만 봐도 대단하죠. 근데 그날 제가 극장에서 느낀 건, 그런 숫자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무언가였어요.
이 영화가 아이들을 열광시킨 그 화려함 뒤에 대체 뭘 숨겨두고 있었는지, 조카 따라 들어간 어른을 몰래 울린 게 뭐였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편하게 풀어볼게요.
줄거리와 명장면 — 얼음이 감정을 품는 방식
크리스 벅과 제니퍼 리 공동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단편 '눈의 여왕'을 원안으로 합니다. 다만 원작과 달리,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얼음과 눈을 만드는 마법을 지닌 엘사(이디나 멘젤), 그리고 언니를 포기하지 않는 안나(크리스틴 벨). 저는 개봉 당시 줄거리를 거의 모른 채 조카와 함께 자리에 앉았는데,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어린 자매가 한밤중에 눈사람을 만들며 뛰노는 짧은 시퀀스가 끝나고, 사고 이후 문이 닫히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때 시작되는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은 단순한 아동용 넘버가 아닙니다. 뮤지컬 넘버(musical number)란 영화나 뮤지컬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노래로 대체하거나 강화하는 장면을 가리키는데, 이 장면은 수년에 걸친 두 자매의 단절을 단 한 곡 안에 압축해 낸 교과서적인 뮤지컬 넘버였습니다. 옆에 앉은 조카는 그때 이미 화면에 온전히 빨려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Let It Go' 시퀀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디나 멘젤이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극장 안의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엘사가 억눌렀던 힘을 처음으로 온전히 풀어내며 얼음 성을 쌓아 올리는 이 장면은,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가 절정에 달하는 지점입니다. 캐릭터 아크란 한 인물이 이야기 안에서 겪는 내면의 변화와 성장 곡선을 의미하는데, 엘사의 아크는 억압에서 해방으로, 그리고 다시 사랑으로 이어지는 3단 구조를 갖습니다. 화려한 CG 연출과 맞물린 그 시퀀스는 지금도 애니메이션 뮤지컬 역사에서 손꼽히는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출처: IMDb).
후반부 안나가 얼어붙어 가면서도 엘사 앞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제가 극장에서 두 번째로 울컥했던 순간입니다. 왕자의 키스가 저주를 푸는 오랜 디즈니 공식, 즉 클리셰(cliché)를 정면으로 뒤집는 장면이었습니다. 클리셰란 반복 사용으로 인해 진부해진 서사 공식이나 표현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그 클리셰를 비틀어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습니다. 로버트 로페즈 부부가 쓴 노래들과 크리스토프 벡의 오케스트라 스코어가 그 질문을 더 깊이 울리게 만들었습니다.
- 뮤지컬 넘버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 자매의 단절을 한 곡으로 압축한 감정선
- 'Let It Go' 시퀀스 — 억압과 해방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애니메이션 뮤지컬의 정점
- 안나의 자기희생 — 왕자의 키스 클리셰를 뒤집은 결정적 반전
- 크리스토프 벡의 오케스트라 스코어 — 감정선을 받쳐주는 서정적 음악 연출
메시지와 총평 — 아이와 함께 봤는데 어른이 더 울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단순한 아동 애니메이션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조카는 'Let It Go'에 흥분했지만, 저는 엘사가 문을 닫을 때 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스스로를 가두는 선택, 그게 어른들에게 훨씬 더 익숙한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겨울왕국'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자기 수용(self-acceptance)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 수용이란 자신의 특성과 결함을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심리적 태도를 말합니다. 엘사는 마법을 숨기며 살다 결국 폭발하고, 그 수용의 과정을 안나의 사랑이 완성시킵니다. 영화가 로맨스가 아닌 자매애를 서사의 중심에 둔 것은,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최우수 노래상을 동시에 수상한 데 분명히 기여한 판단이었습니다(출처: 위키백과). 여성 감독 제니퍼 리가 공동 지휘봉을 잡은 것도 이 방향성을 만들어낸 결정적인 배경이라고 봅니다.
다만 비판 없이 넘어가기는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영화의 후반부 속도감이 지나치게 빠릅니다. 한스 왕자의 반전이 설득력 있게 쌓이지 않은 채 갑자기 제시된다는 점은, 저도 극장에서 "어?" 하고 고개를 갸웃했던 부분입니다. 빌런(villain)의 동기, 즉 악당이 그 행동을 택한 내면의 이유가 충분히 서술되지 않으면 반전이 아닌 의외성으로 그치기 쉬운데, 한스는 아쉽게도 그 선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작품을 두 번, 세 번 다시 봤습니다. 조카 집 거실에서 OST를 수백 번 들었고, 성인이 된 뒤 다시 혼자 화면을 켰을 때 느낀 감정은 처음과 또 달랐습니다. 자매애라는 테마가 얼마나 오래되고 단단한 감정인지를, 이 영화는 얼음과 눈이라는 시각 언어로 조용히 설득해 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겨울왕국은 어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나요?
A.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단편 동화 '눈의 여왕'을 원안으로 합니다. 다만 원작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두 자매의 관계와 자기 수용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완전히 새로 구성했습니다.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얼마나 다른 방향을 택했는지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Q. 겨울왕국 한국 흥행 기록이 얼마나 되나요?
A. 한국에서만 약 1,029만 명을 동원하며 애니메이션 최초로 천만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저도 그 개봉 첫 주 관객 중 한 명이었는데, 당시 극장 안의 열기가 보통이 아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 세계 흥행은 약 12억 8천만 달러로, 당시 애니메이션 역대 1위 기록이었습니다.
Q. 'Let It Go'는 누가 만들고 누가 불렀나요?
A. 로버트 로페즈 부부가 작사·작곡했고, 극 중 엘사 역의 이디나 멘젤이 불렀습니다. 이 곡은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노래상을 수상했습니다. 제가 직접 들어봤는데, 영화 안에서 듣는 것과 OST로 따로 듣는 느낌이 꽤 다릅니다. 시퀀스와 함께 볼 때 감정이 훨씬 크게 올라옵니다.
Q. 어른이 혼자 봐도 재미있는 영화인가요?
A. 저는 아이와 함께 본 뒤 혼자 다시 봤는데, 오히려 혼자 볼 때 더 많은 게 보였습니다. 엘사의 억압과 자기 수용의 과정이 어른의 시선으로는 훨씬 입체적으로 읽힙니다. 자녀와 함께 보기에도, 어른이 혼자 조용히 곱씹으며 보기에도 모두 잘 맞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